5월 14, 2019

퓨처 라이브러리: 100년 후 베어질 나무와 100년 동안 읽을 수 없는 100권의 책들

Katie Paterson, Glasgow, Scotland, 1981. Future Library, 2014. ©Katie Paterson

2014년 여름, 노르웨이 오슬로 외곽 북쪽에 위치한 숲 노르드마루까(Nordmarka)의 작은 공터. 이곳에 천 그루의 작은 가문비 묘목들이 심어졌습니다. 이 묘목들은 백 년 뒤 나무가 되어 종이책을 만들기 위해 사용됩니다.

5년 전, 스코틀랜드 출신 예술가 케이티 패터슨(Katie Paterson)은 백 년을 바라보는 공공예술 프로젝트인 퓨쳐 라이브러리(Future Library)를 계획합니다. 이 프로젝트는 단순한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종이책은 미래에도 계속 존재할 것이며, 숲이 점점 사라지는 환경 속에서 적어도 백 년 동안은 노르웨이의 숲은 보호될 것이라는 생태학적 관점도 있습니다. 현재 이 프로젝트는 노르웨이 오슬로 시(市)가 지원하고 퓨처 라이브러리 신탁(Future Library Trust)이 운영하고 있습니다.

퓨쳐 라이브러리 프로젝트는 백 년을 디자인합니다. 프로젝트는 2014년부터 2114년까지 한 세기를 넘어서 매년 국제적으로 명성 높은 작가 한 명을 선정하고, 선정된 작가의 원고는 2020년에 완공되는 오슬로 도서관의 ‘침묵의 방(Silent Room)’에 보관될 예정입니다. 작가는 이전에 발표한 적 없는 미공개 원고를 제출해야 하는데요. 작가의 미공개 원고는 2114년까지 비밀에 부쳐집니다. 지난 4월, 우리나라 작가로는 처음으로 맨부커상을 수상한 『채식주의자』의 한강 작가가 퓨쳐 라이브러리 다섯 번째 작가로 선정되어 미공개 원고를 침묵의 방에 보관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책은 노르드마루까 숲에 심은 가문비 나무로 만들어지겠죠.

퓨쳐 라이브러리 프로젝트는 언뜻 스페인 건축가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을 연상케 합니다. 백 년이라는 숫자는 오늘날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기에 충분합니다. 사실 이 프로젝트의 낭만적인 면에 가려진 이야기를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요. 패터슨은 2020년부터 원고를 유리상자에 담아 관람객들이 볼 수 있게 전시할 예정이지만 원고 내용은 2114년부터 오슬로 다이히만 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다고 밝혔습니다. 패터슨은 또한 책을 보관할 공간이 명상실처럼 신비롭고 상상을 자극하길 기대한다고 말했습니다. 백 년이라는 영원의 시간을 상상하며 말이죠. 혹자는 이를 “오늘의 문학인이 미래의 독자와 문학인에게 주는 선물”이라 평가합니다. 하지만 읽고 쓰는 실천적인 매개체인 책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와 독자의 세계를 연결하는 책이 퓨처 라이브러리의 신비로운 분위 속 시간의 비트린을 뒤집어 쓴 채 숭배의 대상(페티쉬)이 될 수도 있는 우려스러운 고민도 필요해 보입니다.

한강 작가는 퓨처 라이브러리 작가로 선정된 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밝혔습니다.

“모든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빛을 향해 한 발을 내디뎌야만 하는 순간을 기도라고 부를 수 있다면, 아마 이 프로젝트는 백 년 동안의 긴 기도에 가까운 어떤 것이라고 나는 이 순간 느끼고 있다” (여성신문, 4월 26일 온라인 기사)

100년 후 베어질 나무와 100년 동안 읽을 수 없는 100권의 책들. 이 프로젝트에 노벨문학상과 같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보다 한강 작가의 소감처럼 백 년이라는 아득한 시간을 향하는 이 프로젝트가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의미는 ‘지금, 이 순간’을 느끼게 해주는 것에 방점을 두어야 하지 않을까요?

노르드마루까(Nordmarka) 공터. 숲을 조성 중이다 © Katie Paterson
퓨쳐 라이브러리 인증서 © Katie Paterson
퓨쳐 라이브러리 인증서 © Katie Paters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