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0일은 침묵의 날입니다. 인도의 영적 지도자, 메헤르 바바를 기념하여 그의 추종자들이 하루동안 침묵을 지키는 날입니다. 메헤르 바바에게 일생은 침묵 그 자체였습니다. 1925년 7월 10일부터 숨을 거두는 날까지 44년간 침묵을 지키며 살아갔는데요. 침묵 속에서 얻은 내적인 깨달음을 알파벳 혹은 손짓을 통해 사람들에게 전파했다고 전해집니다.
침묵이란 단어에 대해서는 지루함, 답답함, 어색함 등의 부정적인 것들이 종종 연상됩니다. 낯선 사람과의 식사 자리, 피곤할 뿐인 어느 오후, 혹은 사랑한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어떤 관계 속에서 침묵이라는 불편한 옷을 입게 될 때가 있습니다. 바르트는 이 불편한 상황을 만드는 것은 '침묵 속의 앎'이라고 짚어냅니다. <베르테르의 죽음>의 베르테르는 자살하기 바로 얼마 전 사랑하는 로테와 언쟁을 벌입니다. 그러나 로테의 남편 알베르트가 도착함에 따라 언쟁은 이내 중단되고, 세 사람은 어색한 침묵 속에서 방 안을 서성입니다. 그들이 맡은 남편과 아내, 그리고 그의 정부 의 역할을 인지하고 있는 세 사람은 무의미한 말들이 오히려 거북함만을 남길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냉담 하고 조심스럽게 침묵하는 듯 보입니다.
이와 같이 조금만 생각해보면 불편함을 주는 것은 침묵 그 자체가 아니라 불편한 그 상황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 니다. 침묵이 불편한 것이 아니라 불편해서 침묵하는 것이지요. 모든 침묵이 베르테르의 것처럼 불편함에 뒤따라오는 결과만은 아닙니다. 침묵과 불편함의 연결 고리는 우리가 생각했던 것만큼 끈끈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이 들려줄 수 있는 더 신비롭고 아름다운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아돌프 비오이 카사레스의 <모렐의 발명> 속 주인공의 사랑 이 야기도 그 중 하나입니다.
감옥에서 탈출한 사형수인 주인공은 어떤 황폐하고 버려진 섬에서 이상한 경험을 하게 됩니다. 스스로 외딴 도망자라 고 생각했던 주인공은 섬에서 사람들을 만나는데, 그들이 끊임없이 같은 동작을 반복하는 것을 발견합니다. 주인공은 그들 중 한 여성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녀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은 주인공을 없는 사람 취급하며 어떠한 반응 도 보여주지 않습니다. "내 말을 듣지 못한 것 같았고 나를 보지 못한 것 같았다. 마치 가지고 있는 귀가 듣기에 충분치 않은 듯했고, 눈이 보기에 충분치 않은 듯 했다."고 주인공은 설명합니다. 섬을 탐색하던 주인공은 결국 섬 사람들과 섬의 비밀을 찾아냅니다. 외딴 섬은 모렐이라는 사람이 발명한 영사기가 재생되기 위한 공간이며, 섬의 사람들은 그 영사기에 의해 투사된 영상이라는 사실입니다. 모렐은 모든 움직임과 사람들을 기록하고 재생할 수 있는 기계를 고안 했습니다. 영사기가 재생되는 순간 녹화된 사람의 '모든 것', 즉 존재 자체가 환영 사이로 다시 떠오릅니다. 모렐을 포 함한 섬의 사람은 오래전에 죽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나 섬을 둘러싼 밀물과 썰물의 동력으로 돌아가는 영사기 가 재생되는 한 그들은 영원히 살아 움직이며 모렐의 거대한 작품을 완성합니다.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비논리적인 대상에 사랑을 느끼고 비논리적인 생각에 빠져 있다는 것을 깨달은 주인공은 언어 의 상징적이고 질서정연한 체계를 우회해 갑니다. 주인공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침묵으로 일관하는 섬의 사람들과 새 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나가기로 결심합니다. 자신에게로 절대 향하지 않는 그녀의 시선을 끌어오기 위해 주인공은 모 렐의 발명품을 이용하여 자신을 촬영하기에 이릅니다. 그는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그녀의 흔적을 정밀하게 관찰하고 그 타이밍에 맞추어 자신의 말과 행동을 연출합니다. 대화가 오가며 서로를 바라보는 경험을 겪을 수 없었지만, 오히 려 그것의 결여로부터 주인공은 영원한 사랑을 찾아냅니다. 침묵의 언어를 이해하고 침묵 속의 대화를 완성한 주인공 의 새로운 이야기가 영사기에 재생되며 섬 전체를 가득 채우게 됩니다. 마침내 침묵의 이야기 끝에 “나는 더 이상 죽은 것이 아니다. 난 사랑에 빠졌다.”는 말을 남깁니다.
<모렐의 발명 속> 주인공과 마찬가지로, 우리는 종종 설명할 수도 해결할 수도 없는 상황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침묵
을 통해 멀리 돌아가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이야기가 있을 지 모릅니다.
"나는 체계를 바꾸고 싶다. 더 이상 가면을 벗기지도 않고, 더 이상 해석하지도 않고, 다만 의식 자체를 아편으로 만들
어 현실의 자취가 없는 비전(vision)에, 위대한 꿈의 선명함에, 예언적인 사랑에 이르고 싶다.", 바르트, 사랑의 단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