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아르테미스 신전이 파괴된 날입니다. 고대 그리스 에페소스(오늘날의 터키 부근)에 위치한 아르테미스 신전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달과 사냥, 순결의 여신 아르테미스에게 헌정된 신전입니다. 그리스 시대 최초의 대리석 신전이자 18m 높이의 기둥 128개로 이루어진 아르테미스 신전은, 높이 10m의 기둥 58개로 이루어진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의 규모를 뛰어넘습니다. 그리스 전역에서 가장 이름높은 조각가와 가장 순도 높고 아름다운 백색의 대리석이 총동원된 아르테미스 신전의 건축은 무려 120년이 지나서야 완성되었습니다 . 그리스의 시인 안티파트로스의 시 속에서도 아르테미스 신전은 고대의 세계 7대 불가사의 중의 하나로 꼽히며 아름다운 위용을 드러냅니다. [나는 전차(戰車)를 위한 길이 있는 바빌론의 높이 치솟은 성벽을 보았고, 알페우스가 세운 제우스 신상(神像), 공중정원, 태양의 거상과 수많은 노동력으로 지은 높은 피라미드와 거대한 마우솔로스의 묘를 봤었다. 그러나 내가 구름 위에 치솟은 아르테미스의 집을 보았을 때, 그들 다른 불가사의들은 그 빛을 잃었다. 그리고 나는 말했다. "보라, 올림푸스를 빼면, 어떤 장대한 것에도 태양이 비추지 아니하였구나"] (Antipater, Greek Anthology IX.58)
그러나 기원전 356년 7월 21일, 헤로스트라투스(Ἡρόστρατος)는 아르테미스 신전에 불을 질러 파괴했습니다. 방화를 저지른 후 헤로스트라투스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범죄를 자랑스럽게 떠벌리고 다녔으며, 왜 그런 짓을 저질렀냐고 묻자 유명해지고 싶어서 그랬다고 답했습니다. 에페소스의 관료들은 그의 이름이 차후 언급되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했지만, 고대의 역사가 테오폼푸스가 자신의 저서 Hellenics에 이 사건을 기록함으로써 결국 헤로스트라투스는 죽은 후에 그가 바라던 바를 이룰 수 있었습니다.
인류가 완성해낸 위대한 문화적 업적을 헤로스트라투스가 파괴했음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헤로스트라투스의 방화를 '사악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빌렘 플루서는 그의 현상학 시론 『몸짓들』에서 파괴의 몸짓이 모두 사악한 것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파괴의 몸짓은 '시스템 장애'가 아니라 '동기가 있는' 행동이라고 플루서는 설명합니다. 플루서에 의하면 몸짓을 여타의 행동과 구분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결정이 밖으로 나타난 결과라는 사실입니다. 몸짓은 동기가 부여된 행동을 통해 윤리적인 현실 속의 존재가 자신을 표명하는 방식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체적이고 윤리적인 행위자로서 인간이 엔트로피의 법칙에 저항함으로써 완성해낸 '인간 정신' 혹은 '문화'라는 대안의 세계는, 인간을 자유롭게 함과 동시에 인간으로 하여금 우연과 필연 속에서 어떤 판단도 내리지 못하도록 합니다. 이와 같이, 만들어진 것이 있음직하지 않고 방해가 되기 때문에 해체자와 파괴자가 있다고 플루서는 지적합니다. 궁극적으로 파괴자의 행동에 담긴 동기는 인간의 자유인 것입니다. 플루서는 무관심하고 의도가 없는 파괴의 몸짓에서만 비로소 악(惡)을 발견할 수 있다고 봅니다. 순수한 선이 비인간적이듯 순수한 악 또한 인간적이지 않으며, 오직 이러한 파괴와 해체의 몸짓들로부터 세계 속에 실재하는 악, 즉 '악마'가 현존함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나아가 '사악하지 않은' 파괴의 몸짓들을 세분화하기 위해 플루서는 독일어 속 '제거'와 '해체' 사이의 미묘한 차이에 집중합니다. '체어슈퇴룽(Zerstörung)'은 성가시게 방해되는 것의 제거를, '데슈트룩치온(Destruktion)'은 규칙을 와해시키는 것을 뜻합니다. 플루서는 죄수와 체스 경기자의 예를 들어 설명합니다. 먼저, 자신이 수감된 감옥의 벽을 무너뜨리려는 죄수가 있습니다. 벽이 자신의 자유에 '방해'가 되며, 그것은 그 안에 있는 죄수들을 구속하기 위해 '특정한 규칙으로 구축된' 돌이라는 판단의 결과로 일어난 그의 몸짓은 제거와 해체를 동시에 담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어서 위태로운 상황에 놓인 체스 경기자가 체스 판을 뒤엎는 모습을 볼까요? 패배를 피하기 위한 의도를 가진 그의 행동은 명백히 파괴의 몸짓입니다. 체스 경기자는 자신의 승리에 방해가 되는 체스의 규칙을 파괴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에는 제거와 해체가 분리됩니다. 그는 게임의 규칙을 와해시키기보다는 아예 제거해버림으로써 오히려 그것을 시인했기 때문입니다. 플루서의 비유에 따르면 마치 법률이 유효함을 따르는 도둑처럼 말입니다. 그렇다면 헤로스트라투스의 방화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헤로스트라투스는 신전에 불을 지른 뒤 사람들 앞에서 '유명해지기 위해서 그랬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습니다. 동기를 가지고 이루어진 헤로스트라투스의 방화는 명백히 파괴의 몸짓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런 의도 없이 순수하게 이루어진 파괴가 아니기 때문에 '사악하다'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면밀히 관찰해 보면,헤로스트라투스의 방화는 체스 플레이어가 보인 파괴의 몸짓과 닮아 있습니다. 영웅적 혹은 예술가적 재능을 부여받은 사람은 현세에 주목을 받거나, 뒤늦게 발견되어 찬미의 대상이 됩니다. 헤로스트라투스는 자신에게 아무런재능을 선물해주지 않은 운명에 불만을 가졌으며, 그로 인해 자신이 절대로 유명해질 수 없다는 사실에 부당함을 느꼈을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승산이 없는 체스 경기자가 게임의 규칙을 파괴하기 위해 판을 뒤집듯, 헤로스트라투스 역시 자기가 이길 리 만무한, 재능있는 사람들과의 역사 속에서 본인의 이름을 남기기 위해 신전에 불을 지른게 아닐까요? 재능있는 예술가들이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낸 창작물이자 당대 최고의 정신적 유산인 아르테미스 신전이, 곧 헤로스트라투스에게 뛰어넘을 수 없는 게임의 규칙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헤로스트라토스의 악명은 문헌 속에서 지속적으로 계승되어 오늘날까지 살아남고 있으며, 그의 이름은 악행으로 인한 유명세를 즐기는 사람을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헤로스트라토스의 몸짓은 역사 속에서 반복됩니다. 오늘날 잘 알려진 사례로 비틀즈의 멤버인 존 레논을 암살한 마크 데이비드 채프먼이 있습니다. 레논을 총으로 쏘고는 『호밀밭의 파수꾼』을 읽으면서 경찰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던 채프먼은, 뚜렷한 범죄 동기가 밝혀지지 않은 가운데 이 사건으로 인해 자신이 유명해졌다고 생각한다고 말했습니다. 당시의 '신'과 같았던 레논을 죽임으로써 수많은 기사와 인터뷰의 주인공 자리를 차지했던 채프먼은 현대의 헤로스트라투스와 다름없습니다. 헤로스트라토스와 채프먼은 역사 속 유명한 악질범으로 남았습니다. 그런데 역사 속에 불멸하는 정복자 알렉산드로스 대왕
과 나폴레옹 또한 헤로스트라투스와 동일한 게임의 규칙을 따르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파괴의 현장마다 서기관과 예술가를 대동하여 자신의 위업을 기록으로 남기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나폴레옹은, 게임의 규칙을 파괴하는 것을 통해 오히려 그것을 시인했던 헤로스트라투스와 달리 그것을 철저하게 해체했습니다. 하나의 신전과 가수를 파괴하면 범죄자로, 그것을 천문학적인 규모로 늘리면 정복자로 기억됩니다. 장 로스탕(Jean Rostand)의 말은, 이들이 새롭게 쓴 게임의 규칙을 들려줍니다.
"한 사람을 죽이면 살인자가 되지만, 백만명을 죽이면 정복자가 된다. 그리고 모두를 죽이면 신이 된다.(On tue un homme, on est un assassin. On tue des millions d'hommes, on est un conquérant. On les tue tous, on est un dieu.)"